신명기 9장 3-5절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공의가 아니라 가나안 민족들의 악함 때문이며, 하나님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된 신앙생활의 이유를 자꾸 우리한테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헌금을 잘 내면, 봉사를 잘 하면, 교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등등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와 교회 조직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면 복을 받아 잘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을 받고 잘 되는 데 있어서 우리쪽에서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착하고 의로워서 가나안 땅을 심판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었기에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마저도 첫 번째 정탐에서는 불신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광야에서 40년이나 헤맨 후에 비로소 다시 가나안에 들어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거나 남의 악함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있는 자들은 자신의 악함과 곧은 목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공로가 없고, 사랑의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십니다.